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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23. 23世 〉3. <요재공>증호조참판공휘성유묘갈명(贈户曹叅判公諱成裕墓碣銘)
1. 문헌 목록 〉23. 23世 〉5. <요재공>십남매위친유모곡비음기(十男妹爲親孺慕曲碑陰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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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요재공>증호조참판공휘성유정부인이씨묘표(贈户曹叅判公諱成裕貞夫人李氏墓表)
贈户曹叅判公諱成裕貞夫人李氏墓表 士君子讀書知義理所行宜卓爾而或遜於閨中無見無聞之一夫人故夫人之有懿行者謂之女士玉川趙公成裕夫人全州李氏是耶幼在父家己性行端一平居未嘗戲笑夜行必以燭雖族黨不喜赴宴樂及笄爲趙氏室禮接君子嘗君子有貞疾裂指封股得延數日縷及不起則貞操潔行豈爲未亡人在世而夫子己有先見以養姑存祀臨命申囑則不心己心心亡夫心爲烈夫人有是矣義方訓子成立夫家以終天年如其烈如其烈其遺訓六條略曰愛惡不憎隨人顔面曰衣服飲食自奉必薄曰奉先盡誠祭饌極精曰敎督子女不假色辭曰對人勿言他人短處曰撫育奴僕得其歎心鳴呼夫人之言行盡於此矣吾向以女士稱夫人者可乎不可乎夫人生 純祖乙巳五月十三日卒於癸巳六月五日葬再遷於潭州北店村後壬坐李氏璿系孝寧大君其所祖孝寧積德累仁子姓蕃衍歷世顯榮父世臣不仕夫家以高麗大將軍璋爲初祖玉川府院君元吉爲中祖 贈司僕正德弘 贈叅議殷國其大舅若舅也一男恒順同中樞追榮其大人户曹叅判夫人例 贈貞夫人二女適都事鄭學聖監察崔箕贊孫男六完珹都事完燁完斗完龍完俊完洪孫女二適康津金煥豊全州李成文完珹男鎭顯鎭纓鎭汶完燁男鎭浩完斗男鎭泰恒順將竪石于考墓使完斗徵不侫文文既斷手完斗又起而請曰祖考至行既蒙發揮矣祖妣貞淑之行不可埋沒願卒惠焉嘉其追遠之誠識撰次如右 丁未季秋之晦 幸州 奇宇萬 撰 증호조참판공휘성유정부인이씨묘표(贈户曹叅判公諱成裕貞夫人李氏墓表) 사군자(士君子)는 책을 읽어 의리(義理)를 알아서 행실이 뛰어나지만 혹 규중(閨中)에서 보고 들은 것이 없는 한 부인에게 뒤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행실이 뛰어난 부인을 여사(女士)라고 부르는데 옥천조공(玉川趙公) 성유(成裕)의 부인 전주이씨(全州李氏)가 그런 분이다. 부인은 어려서 친정에 있을 때부터 성품과 행실이 단정하여 평소 함부로 웃거나 장난을 하지 않았으며 밤에 다닐때에는 반드시 등불을 밝혀 들고 다녔으며 비록 일가 친척의 잔치에도 가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조씨 집안으로 시집 와서는 예의로써 남편을 받들었는데 한번은 남편이 병이 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놓고 허벅지 살을 베어 삶아먹여 며칠을 더 살게 하였다. 남편이 죽으면 그 정조(貞操)와 깨끗한 행실로 어찌 따라 죽지 않고 남아 살았겠는가만 남편이 선견지명(先見之明)이 있어서 임종(臨終) 때 「죽지 말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제사를 받들라.」고 거듭 부탁하여 죽지 못하고 남편의 뜻을 따르기로 하였으니, 열부인(烈夫人)이라 하겠다. 의리로써 아들을 가르치고 집안을 일으켜 세운 후 천수(天壽)를 마쳤으니 참으로 열부(烈婦)가 아닌가? 여섯 조목의 유훈(遺勳)이 있는데 대략 말하기를 「一, 사람의 안목(顔目)에 따라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말라. 一, 자신이 먹는 음식과 입는 의복은 반드시 검소하게 하라. 一, 선영의 제사를 정성껏 지내고 제수(祭需)는 정결하게 장만하라. 一, 자녀를 가르치면서는 안색이나 말에 희노(喜怒)를 나타내지 말라. 一, 남에게 다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말라. 一, 하인들을 사랑하여 그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라.」는 것이었으니 부인의 말씀은 참으로 훌륭하였다고 하겠으며 내가 아까 부인을 여사(女士)라고 일컬은 것이 옳지 않겠는가? 부인은 순조(純祖) 을사(一八二五)년 五月 十三日에 태어나 계사년(一八九三) 六月 五日에 돌아가셨는데 담양(潭陽) 북쪽 점촌(店村) 뒤 임좌(壬坐)로 이장(移葬)하였다. 이씨는 왕족으로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자손인데 효령대군이 덕(德)을 쌓아 자손들이 번성하고 대대로 현달한 사람이 많이 나왔으며 친정 아버지 세신(世臣)은 벼슬을 하지 않았다. 시댁은 고려 때 대장군(大將軍) 장(璋)을 시조로 하며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 원길(元吉)을 중시조(中始祖)로 하며 증사복정(贈司僕正) 덕홍(德弘), 증참의(贈參議), 은국(殷國)이 시할아버지와 시아버지이다. 아들 항순(恒順)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인데 그의 추은(推恩)으로 아버지가 예조참판에 추증된 것이며 부인도 정부인(貞夫人)에 추증된 것이다. 두 딸은 도사(都事) 정학성(鄭學聖)과 감찰(監察) 최기찬(崔箕贊)에게 출가하였다. 완성의 아들은 진현(鎭顯) 진영(鎭纓) 진문(鎭汶)이며 완엽의 아들은 진호(鎭浩)이며 완두의 아들은 진태(鎭泰)이다. 항순이 아버지 묘에 비석을 세우려면서 완두를 시켜 나에게 비문을 청하였다. 나는 글을 손에다 떼고 있어 사양했더니 완두가 일어나서 청하기를 「우리 할아버지의 지극한 행실을 이미 비문에 써주셨습니다. 할머니의 정숙(貞淑)한 행실 역시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되니 끝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하였다. 그래서 그의 조상을 위하는 정성을 아름답게 여겨 이상과 같이 쓴다. 정미년 구월 그믐날 행주(幸州) 기우만(奇宇萬)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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